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하자 정부는 본격적으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현황을 들여다보면 특정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려는 정책이 오히려 그 나라로의 의존도를 높였다는 뜻이죠.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특정국에 90% 이상을 의존하는 소부장 품목은 2018년 375개에서 지난해 437개로 7년간 62개(16.5%) 증가했는데요, 다변화 정책이 시작된 2019년 이후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19년과 2020년엔 373개, 374개 수준에 머물렀지만 2021년 408개로 급증한 뒤 지금까지 400개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준을 낮춰서 봐도 상황은 비슷한데요. 한 국가가 50% 이상을 차지하는 소부장 품목은 2018년 1787개에서 지난해 1900개로 113개 증가했고, 7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도 951개에서 1055개로 104개 늘었습니다.

사진: Pexels · Alexander Isreb

의존도가 높아진 국가는 단연 중국입니다. 최대 수입국이 중국인 소부장 품목의 비중이 2018년 41%에서 지난해 51%로 10%포인트 상승했다는 뜻입니다. 반면 일본은 20%에서 14%로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동 압연·압출 제품의 경우 더욱 극단적인데요, 2018년엔 일본이 최대 수입국으로 26.3%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엔 중국 비중이 98.7%까지 높아졌습니다.

공급망 불안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기술개발 사업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종료된 소재부품기술개발 성공 과제 772건에 투입된 정부출연금이 2조4832억원인데, 이 중 455건(58.9%)이 현재까지 매출 실적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실적 없는 과제들에만 1조1468억원이 들어간 셈이죠.

매출이 없는 사업들 중엔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기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소고무 핵심 소재 공정 기술개발에는 119억3000만원을 지원했고, 반도체 공정용 드라이 펌프 기술개발에는 87억300만원을 지원했으나 모두 매출이 없었습니다. 정부 지원금 30억5600만원을 받은 수소 충전소용 저장 용기 개발도 최종평가에서 우수를 받았음에도 매출은 '0'입니다.

산업통상부는 "성공 판정 이후에도 시제품 테스트와 양산 라인 구축, 인증·표준화 등으로 성과 발생이 지연될 수 있으며, 기업의 경영 악화로 사업이 중단되기도 한다"며 "과제 종료 후 5년차까지 매년 사업화 매출액과 특허, 고용 등의 성과를 추적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 의원은 "공급망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우리 산업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며 "기존 공급망 다변화 정책이 실제 의존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취약 품목을 중심으로 대책을 실효성 있게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