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미국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둔화되는 비관 시나리오에서 한국의 반도체 수출 물량이 기존 전망보다 500억~1000억달러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은행이 26일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서면 답변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한국은행이 당초 전망한 내년 반도체 수출 물량은 6000억달러입니다. 최대 1000억달러가 줄면 당초 전망치의 6분의 1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경제전망에서 제시한 비관 시나리오에 구체적인 숫자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내년 반도체 수출 물량 증가율이 당초 예상한 10%대 초중반에서 10% 내외로 낮아지고, 반도체 단가도 예상치보다 10% 내외 하락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물량과 단가가 함께 꺾이는 조건에서 나온 계산입니다.

성장률과 경상수지

한국은행은 같은 비관 시나리오에서 내년 성장률이 0.4%포인트 떨어지고, 경상수지 흑자도 당초 전망치인 4300억달러를 상당 폭 밑돌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경상수지는 상품과 서비스 거래, 소득 흐름을 합산해 해외와 주고받는 돈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로, 흑자는 받은 돈이 준 돈보다 많다는 뜻입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약으로 묶인 물량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이후 중국의 범용 반도체 생산이 늘어나거나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돼 가격이 떨어지면 경상수지 흑자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원화 가치 압력

한국은행은 AI 투자 둔화가 외환시장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줄고 성장률이 떨어지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서면 답변에서 밝혔습니다.

이번 답변은 반도체 수출, 성장률, 경상수지, 원화 가치를 하나의 비관 시나리오로 묶어 제시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전망에서 언급한 비관 시나리오의 숫자를 이번에 처음으로 구체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