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내년 1월부터 생산 단가를 인상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제조 비용과 전력비 상승을 이유로 파운드리 가격을 올리는 건데, 이 결정이 반도체를 설계해 판매하는 팹리스 업체들의 제품 가격 인상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TSMC의 인상 폭은 제품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같은 전자기기에 쓰이는 비교적 오래된 공정의 반도체인 성숙공정은 3~10%, 가장 최신 기술인 2나노미터 제품은 기존에 이미 10~20% 인상된 상태에서 내년 1분기부터 추가로 6~8%를 더 올릴 예정입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팹리스 업체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 전력을 관리하는 전력관리반도체(PMIC), 화면을 구동하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마이크로컨트롤러(MCU) 같은 칩을 만드는 업체들이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자신들의 가격도 인상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예상 인상 폭은 5%대에서 두 자릿수까지 다양합니다. 이들도 TSMC에 제품 제조를 의뢰하는 입장이어서 TSMC의 비용이 올라가면 자신들의 원가도 함께 오르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생산에 드는 비용은 여러 곳에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부터 제조 장비, 각종 원재료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생산비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인데요, 특히 TSMC가 전력비 상승을 강조한 이유는 반도체를 정밀하게 만드는 데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완성 후 마무리 공정인 후공정 비용도 마찬가지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는 이미 수요가 많은 일부 생산능력에 대해 가격을 올렸으며, 올해 3분기에 생산되는 웨이퍼부터 인상된 가격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중인데, 구체적인 인상 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가격 인상 소식은 반도체를 구매하는 전자기기 제조사들의 구매 움직임도 바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비싸질 제품들을 미리 사두려는 선주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인데, 그 배경에는 여러 우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분쟁으로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하나이고, 인공지능 수요의 급증으로 반도체 생산 여력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주문해두면 예상 외의 공급 부족 상황에서도 제품 생산을 계속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모든 팹리스 업체가 올라간 원가를 제품 값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부 전자기기 제조사들이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을 요구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파운드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팹리스 업체들은 TSMC나 삼성전자 같은 소수 파운드리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올라간 생산비를 모두 제품 가격에 담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