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경유를 들여오기로 하면서 발발 4년째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갈림길에 서게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런 내용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산 경유를 공급받는 것에 맞춰 미국이 대러 제재를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방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즉시 30만t 이상의 경유를 공급하고, 11월에 50만t을 더한 뒤 그 직후 100만t을 보내기로 했다고 적었습니다. 총물량은 480만t입니다. 미국은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해 내년 4월 7일까지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는데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은 금지돼 왔던 만큼, 이번 면허는 그 금지 아래에서 예외를 두는 것이죠.

이번 합의가 나온 배경에는 기름값이 있습니다. 중동에서 장기화하고 있는 이란 전쟁의 여파로 미국 안에서 휘발유 가격은 전쟁 전보다 배럴당 1달러 넘게 올랐고, 경유 가격은 70% 넘게 뛰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다음달 3일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이 가격 부담은 그대로 정치의 무게로 돌아오고 있죠.

우크라이나·EU 반발, 대러 공조에 균열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엑스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적으며, 러시아가 더 많은 테러와 배신으로 경유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크라이나는 새 대통령을 맞이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대러 공동 전선에 균열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미국 안팎의 비판과 엇갈린 전망

미국 안에서도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엑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에서 벌인 무모하고 불법적인 전쟁으로 경유 가격이 치솟자 흔들리는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려고 “악마와 거래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딕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러 제재 해제가 우크라이나 분쟁을 길게 끌 뿐이라고 평가했죠.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시간 상원 선거의 핵심 경합지에 출마한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과 알래스카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이 이번 합의에 반대 뜻을 밝혔습니다. 돈 베이컨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번 합의를 “대통령의 중대한 실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로 기름값이 실제로 내려갈까요? 마이클 린치 에너지정책연구재단 특별연구원은 “침몰하는 타이태닉호에서 갑판 의자의 위치만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기존 고객들이 다른 곳에서 물량을 찾아야 해 공급 경로만 옮겨 갈 뿐, 세계 시장이나 미국 전역의 가격까지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그레고리 브루 유라시아그룹 석유 분석가는 미국이 하루 360만 배럴의 경유를 생산하고 그중 약 3분의 1을 수출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이번 합의로 단기간에 미국 시장에 더해질 물량이 하루 7만4000배럴에 그친다며, 러시아 쪽에서 심각한 경유 부족을 겪고 있어 합의가 실제로 이행될지도 의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음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11월에 예정된 50만t 추가 공급이 약속대로 이뤄질지, 그리고 임시 일반면허가 내년 4월 7일까지 유지될지죠. 다음달 3일 중간선거 결과도 이 흐름에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